팬데믹에는 두부를 드세요!

시카고 다운타운에 바람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눈에 띄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미국 광고(?)답지 않게 귀엽게 생긴 캐릭터가 연말 분위기를 한껏 내고 있었는데, 운전 중인 터라 Tofu (두부) 어쩌고 하는 것과 밑에 “Peta” 만 보고 집에 와서 제대로 찾아보자 싶었죠.

구글에 “Peta Tofu Ad” 로만 검색하니, 이 광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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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Peta

TOFU NEVER CAUSED A PANDEMIC.
TRY IT FOR THE HOLIDAYS.

두부는 팬데믹 (범 유행) 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연말에 한번 드셔보세요.

PETA

근데 이게 뭔 소리야

이것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죠. 하다하다 두부가 팬데믹의 주범이란 말도 있었나? 두부는 죄가 없다 뭐 이런건가? 그리고 Peta 라는 단체는 대체 무엇?

일단 Peta 라는 단체를 찾아보니,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이라는 약자를 가진 단체네요. “동물의 윤리적인 취급을 위한 사람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동물 보호 협회의 이미지가 강하게 와닿네요.

Peta 의 홈페이지를 들러보니, 두부에 대한 장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단백질이 풍부한 이 식물성 음식은 동물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 (두부의 원료인) 콩으로 1갤런 (3.8L) 의 두유를 만들때 들어가는 물의 양이
    같은 양의 우유를 생산할 때보다 1/14 수준으로 낮다
  • 두부는 콜레스테롤 함량이 0이며, 심장병, 암 그리고 다른 치명적인 질병 위험을 낮춰준다

그리고 이 광고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된 내용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 동물을 가둬놓고 죽이는 행위 (공장식 축산을 말하는 것 같네요) 로 인해 스페인 독감과 COVID-19 을 포함한 여러 치명적인 동물성 전염병이 발생했다
  • COVID-19 의 위험에도 뉴욕 시 내에 80곳의 동물 시장과 도축장이 운영중이다
  • 미래에 발생할 팬데믹 (범 유행)을 막기 위해 이러한 전염병의 근원을 차단해야 한다
  • 그러므로 건강하고 인간적인 두부를 많이 먹자!

이런 정도 내용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일견 맞는 말인 것 같죠? 20세기 초 발생한 스페인 독감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나, 1차 대전 당시 영국군이 식량으로 잡던 조류의 바이러스가 돼지로 전염되면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현재 진행 중인 COVID-19 역시 중국 우한의 동물 시장에서 발원했다고 하죠. 그 외에 조류독감 및 돼지독감 등 동물성 전염병의 문제가 심각하기도 하니, 식물성 식단에 대해 한번쯤 고려해 볼만도 하다 생각되네요.

한 편에서는 “낄끼빠빠 모르냐?” 비판도

Peta 의 이 두부 광고는 2020년 상반기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반응을 찾아보니, 역시 다양성의 나라 미국답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충 반응은 이러합니다.

  1. (당시 COVID-19 가 한창이었던 때)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런 광고나 올릴 때냐!
    → 분위기 파악 못하는 광고 때문에 채식주의가 역풍 맞는다
  2. 가뜩이나 COVID-19 때문에 동양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을 때 두부 광고
    → 인종차별적이다! (?)
  3. 식물성 단백질이 일반 육류보다 더 비쌀 수도 있다.
    → 돈없는 사람은 생각 안하냐!
  4. (조금 황당) 노숙자가 누울 수도 없는 벤치에 (아래) 저렇게 광고를 붙여놨어
    → 계급주의냐! (노숙자 친화적이지 못한 조형물에 대한 논란이 많더군요)
https://twitter.com/ellorysmith/status/1292832594581569539

뭐 일리있는 이야기도 있고 이건 뭐야 싶은 것도 있는데, 하여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 두부 광고인 것 같네요.

자극적인 방식과 행동으로 동물보호를 주장하는 Peta

두부 광고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어쩌면 Peta 단체에 대한 반감 때문에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Peta 는 실험실에서 고통받거나 도축장에서 도살되는 동물들에 대한 적나라한 이미지를 가감없이 표현하여 소위 “논란”을 일으키는게 이들의 주된 활동 방식입니다 (퍼포먼스나 사진들이 굉장히 자극적이라 여기에는 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에 일반인들이 보기에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도 있어, 그간의 활동이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한 부분들도 있는듯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인상적인 활동은, 명품 브랜드들의 동물 피혁 혹은 털을 이용한 제품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면서, 단순히 캠페인이나 시위에 그치지 않고 직접 “실력 행사”를 하여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2016년 Peta는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주주(!)가 되어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동물 가죽제품 생산의 제동을 걸고, 2019년 프라다는 결국 이에 동의하였는데요. 논란이나 대중의 반응과 상관없이, 기부금을 바탕으로 한 막대한 자본으로 이렇게 목소리를 낸다는 것 역시 “찐” 자본주의 미국의 단면이기도 한것 같네요.

Peta 활동가들이 프라다 매장 앞에서 타조 피혁을 이용한 프라다 가방에 항의하고 있습니다.
Credit: Peta

두부 캐릭터로 분위기 반전 성공!

그런데 그 간의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운동 방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요? Peta의 두부 광고는 동물의 도살 현장이나 피를 보여주지 않고도 이슈 메이킹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2020년 9월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두부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0% 신장했다고 하는데요. 미국 내 Nasoya 두부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풀무원의 경우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한국에서 두부 1백만 팩을 공수해 와야 했다네요. 기사는 이러한 인기의 원인 중 하나로 Peta 의 두부 광고를 꼽습니다.

두부를 이용한 레시피 검색도 급격하게 증가했는데요, 구글 검색에서는 두부의 검색량이 지난 3월 이후 두 배로 증가했으며, 홈 쿡 레시피 웹사이트인 Allrecipes 에서 두부를 이용한 요리 검색은 3월 한 달간 266% 증가했을 뿐 아니라, 지난 7월에는 쇠고기, 돼지고기 혹은 닭고기를 이용한 요리 검색량을 앞지를 정도였다네요.

또한, 두부는 보통 팩 안에 물과 함께 담겨 포장이 되는데,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이러한 포장방식이 다소 다가가기 어려웠나 봅니다. Peta의 친근한 두부 캐릭터 광고가 소비자들의 이런 인식 변화에 기여함과 동시에, 제조사들은 두부를 활용한 간편 식품 개발에 나서면서 계속적으로 인기를 이어나가려고 노력 중이라고 하니, 두부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Peta 는 2020년 한 해 두부 캐릭터를 꾸준히 밀면서, 아예 두부 관련 상품들도 끊임없이 내놓고 있습니다. 땡스기빙 때는 두부 캐릭터 모양 코스튬을 내놓는가 하면, 연말 선물 아이템 중에는 ..두부 향 양초..도 있네요. 이거 장난이 너무 심한거 아니오 두부를 좋아하는 저로서도 굳이 공감은 안가지만, 뭐 노력 하나는 가상합니다.

마치며..

두부 광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육식을 버리고 채식으로 돌아설까요? 육류 고기의 매력을 계속 경험해 온 대다수의 사람들의 식성을 변화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저로서도 두부는 두부, 고기는 고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요. 하지만 적어도 새로운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도는 칭찬할 만 합니다.

Peta 가 종전의 극단적인 운동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친근하고 대중의 공감을 사는 활동을 지속한다면 보다 더 환영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여도 극단주의를 달리는 것은 그 의도를 반감시키기 때문이니까요.